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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풍경

영원히 젊은 사람은 없다. 늙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머리로는 그리 생각하지만 노화를 받아들이기란 쉽지가 않다. 많은 이들이 나이듦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어쩌면 죽음이 끊임없이 연상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이가 듦에 따라 우리는 많은 것을 잃는다. 과거처럼 생기 넘치지 못하며 신체의 기능 또한 떨어진다. 사회에서의 역할 역시 축소된다. 버젓이 직장을 잘 다니던 사람들이 은퇴를 한다. 운이 나쁘면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생산성을 최우선시하는 문화 탓이다. 저렴한 임금으로 고용이 가능한 젊은 층이 넘치는 시대에 굳이 고임금을 감당하면서 나이 든 직원을 붙잡으려 하는 회사는 없다. 그런지라 우리 시대의 부모들은 서글프다. 처음부터 이러한 시선이 보편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핵가족이 보편화되었고, 1인으로 이루어진 가구도 상당수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대부분이 조부모 세대와 함께 살았다. 어른을 공경하는 건 삶의 기본이었다. 우리는 윗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부러워했었다. 가족의 단위를 벗어났을 때도 이는 유효했다. 마을공동체가 아직 붕괴되기 전의 이야기인데, 지역 내 어르신들을 향해 존경을 표하는 게 당연했다. 우리는 이를 전통이라 여겨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노화를 바라보는 대상임과 동시에 경험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살다 간 이들 역시 그러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기록을 통해 제 노화를 평했으니, 본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이듦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흔히들 동양적인 시선이라 하면 나이를 초월한 무언가를 떠올린다. 적어도 서양인들에 비해서는 무언가를 바라봄에 있어 부정적인 시선을 덜 견지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래 살 길 기원하는 마음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적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은 그런 마음들이 반영돼 만들어졌을 것이다. 제 부모와 자녀가, 자기 자신이 오래 살길 염원하는 마음들은 일종의 의식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얼마나 효험이 있었는지 여부까지는 평할 수 없겠으나 그런 의식들을 행하는 것 자체가 당대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위로를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주글주글 이마를 덮고 있는 주름이 싫다며 사진 찍길 거부하는 이들도 많다. 잔주름조차도 적나라하게 포착해내는 사진이 무섭기 때문인데, 사진이 존재치 않던 시절엔 그림이 이를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은 모사가 아닌지라 작가의 의중이 백분 반영될 수 있다. 이왕이면 젊고 아름답게 제 모습이 그려지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일 터인데, 의외다 싶을 정도로 그림들은 솔직했다. 굳이 왜곡을 가하면서까지 젊음을 추앙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듦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더라면 결과물이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죽는 것 이상을 상상하며 산다.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현학적 주제까지 건드리는 이들도 물론 있겠으나, 보편적인 경우를 본다면 웰다잉, 즉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이 상당수 증가했다. 죽음을 소멸로 인식하는 가치관 하에서는 단지 죽음을 피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기 마련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선에 따르면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자, 이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 사이를 이어주는 일종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죽음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잘 준비해야만 한다.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을 구분하고, 스스로가 좋은 죽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애써야만 한다. 이 주제는 난해하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가치 판단이 힘들며,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이를 폄하해서도 곤란하다. 아니, 노년이라는 주제 자체가 어쩌면 아리송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떠한 관점을 하고 바라보아야 하는지 적잖은 서적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으나 결국 자신에게 맞는 정답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젊음이 한 풀 꺾이고 서서히 중후함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과도기에 서서는 내 나이듦을 평해본다. 삶의 매 순간순간, 나아가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 과연 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죽는 것이 서럽지 않고 늙는 것이 슬프다 시간의 흐름은 파멸과 쇠퇴를 가져오며, 모든 신체적 변화에는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있다. 노년에 접어든 자들은 매일같이 쇠하는 기력과 맞닥뜨린다. 시력은 떨어지고 귀는 들리지 않는다. 지적인 능력의 감퇴로 어제 일을 오늘 기억 못 하며, 거꾸로 먼 과거의 일은 또렷이 다가온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이 거울을 보며 자탄하는 말은 노년의 삶과 풍경이 얼마나 어두운 것인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네가 보여준 얼굴이 그 옛날 가을 물처럼 가볍고 밝던 것이 어이하여 마른 나무처럼 축 처져 있으며 (…) 그 옛날 다림질한 비단 같고 볕에 말린 능라 같던 것이 어이하여 늙은 귤의 씨방처럼 되었으며, 그 옛날 부드럽고 풍만하던 것은 어이하여 죽어서 쓰러진 누에의 죽은 것과 같이 되었으며, 그 옛날 칼처럼 꼿꼿하며 갠 하늘에 구름처럼 무성하던 것이 어이하여 부들숲처럼 황량하게 되었으며, 그 옛날 단사丹砂를 마신 듯 앵두를 머금은 듯하던 것이 어이하여 바랜 붉은 빛 해진 주머니와 같이 되었으며, 그 옛날 조개를 둘러 쌓은 성곽 같던 것이 어이하여 들쑥날쑥 누렇게 때가 끼었으며, 그 옛날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난 것과 같던 것이 어이하여 흰 실이 고치에서 길게 뽑혀나와 늘어져 있는 것과 같이 되었는가? 이렇듯 비탄을 불러일으키는 노년은 다른 한편으로 누구나 갖는 ‘장수’의 바람으로 인해 행복의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행복지표로 ‘오복五福’을 들었는데, 이는 서경書經 에 그 기원을 둔다. 즉 오래 사는 복인 수壽, 부유함을 누리고 사는 부富, 큰 우환 없이 건강하게 사는 강녕康寧, 덕을 쌓으면서 즐기며 사는 유호덕攸好德, 주어진 명命을 다하고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고종명考終命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으뜸은 단연코 ‘수壽’였다. ‘100세 시대’라는 말은 요즘 떠들썩한 수사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이런 시대 흐름에 발맞춰 각 전공 분야의 연구자가 ‘나이듦’과 ‘노년’에 대한 연구를 함께했다. 이 책은 늙음을 둘러싼 오래된 고민과 경험을 통해 노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되돌아보고자 필자들의 개인적인 목소리는 최대한 낮추고 선인들의 삶과 생각을 주 내용으로 한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마다 다양한 인물, 그림, 풍속, 고전작품 등을 통해 늙음의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의 노년 모습까지 동양의 노년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 선인들이 어떤 노년을 보냈으며 그들로부터 배울 지혜와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풍경을 흥미롭게 음미할 수 있다.

제1장 조선 노인들의 장수, 그 오래된 염원 |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제2장 노년의 거장들, 어떻게 달랐나 |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제3장 흰머리와 잔주름의 붓끝에서 피어난 노년의 기상 | 고연희 연세대 강사
제4장 우러름과 능멸의 삶, 늙음을 받아들이는 법 | 김경미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교수
제5장 중국, 늙음의 문자와 음식을 통해 드러낸 삶의 염원 | 황금희 목포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제6장 일본, 액년을 경계하고 나이듦을 축하하다 | 조규헌 상명대 일어교육과 교수
제7장 늙음이 내뱉는 장탄식, 노경에 접어든 자의 심득| 박경환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제8장 좋은 죽음을 향하여 인 Ю?임무로 삼고 천하의 골짜기가 되다 | 임헌규 강남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