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벚나무 아래서
도시락 연다
송송송 하늘에 맺힌
연분홍 꽃잎
바람 따라 솔솔솔
내려앉는 꽃비
김밥 도시락
꽃밥 되었다
봄이다. 봄이면 윤대녕의 소설 「상춘곡」을 생각한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이 벚꽃 필 때 다시 만나자고 하자 사내는 그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다. 그래서 벚꽃 피는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러고는 벚꽃 피는 속도를 따라 첫사랑에게 다가간다. 벚꽃의 속도. 올해는 너도 나도 벚꽃의 속도를 찾으면 좋겠다. 거기에서 식구들과 동무들과 이웃들과 도시락 김밥을 먹으며 놀면 좋겠다. 그러면 김밥이 꽃밥이 되는 순간처럼 환하겠다. 연분홍 꽃잎이 바람 따라 꽃비 되어 내리지 않아도 좋고, 내리면 더 좋고.
보라색 머리핀 하나 사고 싶었는데
보라색 머리핀을 사고 싶었어.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유리창 너머 머리핀을 바라보았지. 누가 먼저 사 가면 어쩌나 마음 졸이며 말이야. 어느 날 드디어 머리핀을 살 수 있었어. 머리핀을 꽂은 거울 속 내 모습이 예뻐. 가슴이 두근댈 정도로. 머리핀 하나로 행복했지. 그런데 보라색 머리핀에 어울리는 옷이 없네. 얼른 보라색 옷을 샀어. 보라색 옷에 어울릴 보라색 구두를 사고 보라색 구두에 어울릴 보라색 양말도. 보라색 모자와 가방도 샀지. 갑자기 필요한 게 너무 많아졌어. 보라색 장갑, 목도리, 수영복, 반지, 목걸이, 시계, 손지갑…… 참, 우산과 장화도 빼놓지 말아야지. 이제 내 몸에 걸친 모든 게 보라색이 되었어. 살짝 말하자면 속옷까지. 보라색 테두리에 보라색 렌즈인 보라색 안경도 꼈으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보라색이야. 나도 온 세상도 보라색인 거야. 보라색 머리핀 하나 사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보라색 머리핀 하나 사고 싶었을 뿐인데.
경쾌한 노래를 듣는 듯하다. 행갈이를 하지 않았지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게 된다. 내용을 보면 아이가 보라색 머리핀을 사고 싶어 한다. 아마도 여자아이겠지. 아이는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유리창 너머 머리핀을 바라보다가 드디어 머리핀을 산다. 머리핀을 꽂은 거울 속 모습을 보니 참 예쁘다. 머리핀 하나로 행복해진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보라색 머리핀에 어울리는 옷을 사고, 옷에 어울릴 보라색 구두를 사고, 보라색 구두에 어울릴 보라색 양말을 산다. 소비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소비 지향의 여자아이로 보이지 않는다. 예뻐지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은 여자아이가 보일 따름이다. 시인이 여자아이를 즐겁게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꽃처럼.
다채로운 서정을 넘나드는
섬세한 언어가 빛나는 동시
계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의 동시 부문(2009년)과 평론 부문(2012년)을 잇달아 거머쥐며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받아 온 신예 김유진 시인의 첫 동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뽀뽀의 힘 은 웃다 보면 어느새 뭉클하고, 새침하다가도 돌연 사랑스러운 다채로운 서정을 섬세하게 그린 동시집입니다.
사물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깨뜨리는 새로운 발상과 시집 전반에 흐르는 재치와 익살이 웃음을 자아내며, 감추거나 꾸미지 않는 솔직함이 동시의 본질에 닿아 있습니다. 생명과 자연, 삶과 가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엄숙함을 벗어던진 젊은 시인의 유쾌한 재잘거림이 시집을 한 편의 발랄한 노래로 느껴지게 합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하듯, 어른 시인이 쓴 동시가 어린이 독자와 교감하는 ‘줄탁동시’(?啄同時)의 시 세계를 꿈꾸는 시인의 바람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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