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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돼지


때때로 패러독스가 시를 이끈다. 그 이끌어감에 이끌려 우리가 나아갈 때 우리의 손안에 시인의 선견지명이 들려 있기도 하다. 생각보다 시가 재미있었다. 시인의 시어와 맥락 속에서는 돼지 껍데기 바싹 익어갈 때의 기름 냄새가 났다. 육즙은 시인이 모두 마셔 사라지고, 우리 입안에는 꼬들거리는 식감만이 남았다. 머리를 가득 채운 연기를 빨아들이는 환풍구 돌아가는 소리만이 남았다. “엄마의 가슴이 아이스크림처럼 폭폭 떠 먹히고 실밥이 풀린 손들이 너덜너덜 국냄비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곳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서쪽 하늘을 손가락으로 닥닥 긁어 먹는 달의 뼈를 고아 뽀얀 국물을 만들고 거기에 땅속 시신들의 육즙을 곁들여 마시는 곳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돼지라서 괜찮아, 키친 컨피덴셜> 중 시인은 고상하고 서늘한 서정의 뉘앙스들을 향해 꿀꿀 짖어버린다. 시를 향하여 달려들어 뒤엉키고 실재를 바꿔 놓는다. 그것들이 귓가를 간지럽힐 때조차 신경질적인 속삭임 같다. 그 속삭임에 어떤 지평을 열어줄 것이란 희망이 섞이기도 한다. 두뇌의 회전 재빠르게 더욱 재빠르게 하다보면 손잡이 없는 그릇 하나 만들어질 수도 있다. 고온에서 구워지기 전의 원형은 잠처럼 질척거릴 수도 있다. “남자는 말했지요, 이 접시는 엄마가 쓰던 거야. 죽은 어머니가 날마다 접시로 출토되는 부엌, 우리는 태어나 꿈을 꾸다가 잠이 된다고 어린 딸이 말했지요.” - <달 그릇 세트> 중 내게 오기 전의 꽃, 피어나기 전의 꽃이 꿈꾼다. 꿈 이전에 잠이 있고 잠의 옆을 꽃이 지킨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꽃의 프로필이 적힌 화병을 선물 받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연루된 사건들이 적힌 카드가 꽂혀 있다. 어쩌면 추문을 읽은 나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것을 선물이라고 해야 할지, 일종의 벌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어색해 하면서 잠에서 깨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꽃아 꽃아 꽃아 꽃아 아프니? 그렇게 묻지 마. 저절로 힘이 몰려와. 광활한 벌판에서 힘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나한테로 오는 거, 그러나 파도처럼 영영 끝에 닿지는 않는 거, 공중이 공중을 낳겠다고 힘주는 거 같은 거, 그러다가 몇 초간 평온한 하늘, 푸른 섬에는 아기가 혼자 살고 있는데 그 아기를 데려와야지, 그런데 힘이 다시 닥쳐오고, 주먹 쥔 하늘이 붉은 황혼을 싸지르려고 하는 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산맥을 넘던 철새가 다시 비상할 때 목구멍으로 마저 산맥을 넘던 철새가 다시 비상할 때 목구멍으로 마저 힘주는 거 같은 거. 먹지도 자지도 않고 번개가 친 다음 번개의 목이 쉬어버리는 거 같은 거. 꽃을 밑으로 낳으려고, 힘을 주는데 꽃이 피질 않아. 다리를 벌리고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데, 넋이 빠지고, 죽음이 닥쳐오고, 그러니 꽃아 꽃아 예쁜 꽃아 그러지 마! 컨텍스트를 파괴하고 텍스트만 남길 것인지, 텍스트를 파괴하고 컨텍스트만 남길 것인지...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과거에 기대는 것이 나을 수도 있고, 현재를 향한 하이라이트만 남기고 모든 모든 불을 꺼버릴 수도 있다. 제아무리 대서특필이 된다고 하여도, 그것을 읽는 나는 감옥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 얼어붙은 채 자신의 유명세와 맞닥뜨려야 하는, 자신의 유명세를 원하지 않았던 살인마가 된 시인을 떠올릴 수도 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일인용 감옥에 살아요 / 나를 피해 내 몸속으로 도망간 소금기둥 같아요” - <일인용 감옥> 중 동시 상영되는 영화처럼 시를 읽는다. 한때 삼류 극장에서는 동시에 세 편까지 영화를 상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동시에 상영된 적은 없다. 그것들은 순차적으로 상영되었을 뿐이다. 시인에게 패러독스가 있었던 것은 아닐 수 있다. 장난처럼 주어진 운명, 이라는 것에 푹 적셔지다보면, 논쟁적이고 난해한 어떤 색에 잠시 물들 때도 있다. 때때로 이것은 읽는 재미, 사는 재미이다. 김혜순 / 피어라 돼지 / 문학과지성사 / 256쪽 / 2016 (2016)
한국 현대시의 최전선에서 울려퍼지는 죽음과 부활, 희생과 구원의 서사
여기, 세상의 모든 것에 관해서 말하는 단 한 편의 시가 있다!

독창적인 상상적 언술의 최극단으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끊임없이 갱신해온 시인 김혜순이 열한번째 시집 피어라 돼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480, 문학과지성사, 2016)를 출간했다. 미당문학상(제6회, 2008)과 대산문학상(제16회, 2008)을 수상한 당신의 첫 (2008)에서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한데 추동하는 장시 「맨홀 인류」를 수록한 슬픔치약 거울크림 (2011)에 이르기까지, 김혜순의 시 세계는 시적 화자 스스로 몸이 부서지고 변화하며 격렬한 이미지의 연쇄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몸서리치는 파동으로서의 몸-리듬 혹은 몸-소리라는 새로운 시-언어를 발견/발명하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

김혜순의 시를 통해 우리는 산/죽은 채로 남성 중심의 지배적 상징질서의 역사가 휘둘러온 폭력에 맞서는 ‘모래 여자’의 몸-비명을 들었고, 악취로 진동하는 ‘전 세계의 쓰레기와 쥐들’이 투척된 구멍 속에서 분출하는 ‘맨홀 인류’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관습적으로 해석돼온 한국 여성시의 풍경과 문법을 비틀고 타파한 이가 김혜순이며, 그리하여 김혜순의 시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시에서 강력한 미학적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김혜순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시학이며, 김혜순 시학은 하나의 공화국 으로서, 동시대의 여성 시인들이 김혜순 공화국의 시민이었으며, 특히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언술 방식과 김혜순 시학의 상관성은 더욱 긴밀 (이광호, 문학평론가)하다고 말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멈추지 않는 상상적 에너지로 좀처럼 자기 반복이라곤 허용하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매번 다른 목소리를 내온 김혜순은 이번 시집에서 세상의 모든 약한 존재자들을, 죽음과 부활을, 사랑과 욕망을, 성과 식(食)을 제 몸에 구현한 ‘다면체-돼지 (권혁웅, 문학평론가)의 몸과 입을 빌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 이 세계의 부패와 폭력, 비참과 오욕의 현실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붉은 물감처럼, 세계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돼지들의, 돼지들을 위한, 돼지들에 의한 장엄한 비창 (조재룡, 문학평론가)으로서, 시집 피어라 돼지 는 허섭스레기처럼 너덜너덜해진 우리 삶과 사회를 때로는 조롱과 유머로, 때로는 격렬한 아픔으로 통과하며 시를 가동 한다.


1부 돼지라서 괜찮아
돼지는 말한다
뒈지는 돼지
철근 콘크리트 황제 폐하!
키친 컨피덴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당신
요리의 순서
돼지에게 돼지가
어두운 깔깔 클럽
Pink Pigs Fluid
돼지禪
마릴린 먼로
지뢰에 붙은 입술
피어라 돼지
구천무곡
산문을 나서며

2부 글씨가 아프다
모욕과 목욕
글씨가 아프다
4월이 오면
메리 크리스마스
설탕생쥐
달 그릇 세트
연어는 좋겠다
우기
수박은 파도의 기억에 잠겨
날아가는 새의 가녀린 겨드랑이

날씨님 보세요
망각의 광채
혼자
커피
꽃아 꽃아
미친 귀
분홍 코끼리 소녀
물의 포옹
웃다
슬픔이 울러 퍼진다
유리 가면
천수천안관세음보살
파리로서
쌍둥이문어

3부 춤이란 춤
사탄의 백합
춤이란 춤
was it a cat I saw?
댄싱 클래스
쿤달리니가 뮬라타라를 떠날 때, 그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게 되며, 그녀가 스바디스타나를 지날 때는 발목 장식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마니푸라에 이을 때는 종소리를, 아나하타에 있을 때는 플루트 음악을, 그리고 마침내 쿤달리니가 비슈다를 통과할 때는 옴의 의식으로서의 여성의 신 시바 샥티가 최초로 현현된 우주의 옴을 듣게 된다
레이스와 십자수에 대한 강박 2
파랑 쥐의 산보
벙어리 둥우리 얼굴이
다음음 입자무한가속기로 만든 것입니다
사라진 첼로와 검은 잉크의 고요
나의 어제는 윤회하러 가버리고
결혼기념일
Y
두 마귀
오리엔탈 특급 정갈한 식당 서비스
공주여 공주여 잠자는 코끼리 공주여

4부 일인용 감옥
올해는 고래가 유행이야
바람의 장례
국어사전 아스퍼거 고양이
저녁의 방화
엘피 공장에서 만나요
석류알 성냥알
올해도 장미가
좀비 레인
일인용 감옥
오물이 자살했다
사각형 그리고 줄무늬

해설 | 단 한 편의 시_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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