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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새벽

쓸쓸할 정도로 무채색의 고요한 느낌의 동화다. 모든 것이 멈춰있는 듯하다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산은 어둠 속에서 말없이 지키고 서 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 실바람. 호수가 살며시 몸을 떤다. 느릿하게, 나른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둠이 서서이 걷히고 미명속에 할아버지와 손자는 천천히 움직인다. 어둠을 깨치고 낡은 배를 물 속으로 밀어넣는다. 배가 호수 한가운데로 고즈넉이 나아간다. 노는 삐걱대며, 물결을 헤친다. 한순간. 산과 호수는 초록이 된다. 산과 호수,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초록이 된다. 하나가 된다. 작가와 작품을 설명하는 글을 읽었는데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을 이 책을 통해 받고 생각했다. 숨죽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조차쉬고 있다는 내색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요된 적막함. 모든 것이 숨죽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하나하나 살아 있다. 달빛은 바위와 나뭇가지를 비추고, 이따금 나뭇잎 위로 부서진다. 산은 어둠 속에서 말없이 지키고 서 있다. 모든 것이 숨 죽어 있는 듯 적막한 곳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잠에서 깬다. 언제나처럼 일상인듯 어둠속에서 동요하지 않고 두 사람은 호수에서 물을 길어 오고 조그만 모닥불을 피운다. 담요를 개고 낡은 배를 물 속으로 밀어넣는다. 배가 호수 한가운데로 고즈넉이 나아간다. 노는 삐걱대며, 물결을 헤친다. 한순간. 산과 호수는 초록이 된다. 북받쳐오는 슬픔과 아픔이 함께 하는 희망. 고통스럽지만 나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일상이 되어 있는 희망.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가 낡은 배를 타고 가야 하는 호수. 하지만 절망이 아닌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배를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가는 시간이다. 어둠이 느리지만 서서히 걷히는 새벽.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새벽은 찰나이다. 언제 어둠이 있었나 하는 그 순간 세상은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과 짝이 되는 책. 중국 시인의 한시를 바탕으로 해서 그린 그림책으로 들판의 해뜨는 광경을 드라마처럼 강렬하나 섬세하게 묘사한 시적인 그림과 옛 중국 시인의 시의 정수만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낸 솜씨가 놀랍다. 머리로 이해하는 과학의 신비로움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눈뜨게 해 준다.